이방인의 시선으로 본 중국 연길, 백두산, 표류하는 청춘···영화 ‘브레이킹 아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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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이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5-06-11 23:43본문
안소니 첸 감독(41)이 영화 <브레이킹 아이스>를 구상한 건,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8월의 더운 여름날이었다. 극장이 전 세계적으로 문을 닫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며 그는 ‘과연 앞으로 내 영화가 설 곳이 있을까’ 우울했다고 한다. 불안은 오히려 원동력이 됐다. 그는 전작들과 아예 다른 영화를 만들어보겠다고 결심했다.
1년 내내 따뜻한 싱가포르에서 나고 자란 첸 감독은 처음으로 ‘겨울 영화’를 고민했다. 기존에는 시나리오 작업에만 2~3년을 들이고 배우들이 대사 토씨 하나 고치지 못하게 했다면, 이번에는 그 강박을 거뒀다. ‘가장 추운 곳에서 세 명의 청년이 나오는 영화를 찍겠다’는 콘셉트만 가지고 배우들을 섭외했다. “중국의 ‘탕핑(躺平, 바닥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청년층)족’이 느끼는 감정을 포착하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만이 명확했다.
중국 유일의 조선족 자치주 연길을 배경으로 세 청년의 일주일간의 짧은 우정을 담은 영화 <브레이킹 아이스>는 그렇게 탄생했다. 2023년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던 이 작품이 지난 4일 한국에서 개봉했다. 중국·싱가포르 현지에서 공개된 지 2년여 만이다.
한국 개봉을 맞아 내한한 첸 감독을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첸 감독은 “중국 청년들이 느끼는 환멸감을 영화에 담았다”며 “중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외부인’으로서 청년들의 ‘표류하는 듯한 감정’을 포착하려 했다”고 말했다.
왜인지 우울한 낯의 하오펑(류호연)은 연길로 여행을 온다. 여자 주인공 나나(주동우)는 조선족의 문화를 소개하는 가이드다. 나나, 그리고 그의 지인 샤오(굴초소)와 하룻밤 어울리게 된 하오펑이 상하이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놓치며 세 사람이 우정을 나눌 시한은 연장된다. 영화는 소소한 일탈을 함께하며 급속도로 친해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제목에 등장하는 ‘얼음’은 세 인물의 관계와 청춘에 대한 은유다. 첸 감독은 “물을 냉장고에 넣어보면 2시간이면 얼어붙고, 밖에 꺼내두면 또 빨리 녹아 물로 변한다”며 “형태가 하나의 머물지 않고 환경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인물들의 관계에 빗대고 싶었다”고 했다. 세 인물은 순식간에 친해지지만, 언제 헤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기도 하다. 첸 감독은 “(헤어지더라도) 이들에게는 기억과 감정이 남을 것”이라고 했다.
첸 감독은 ‘탕핑 세대’를 표현하고자 ‘각자 다른 방식으로 실패를 겪은 이들’을 주인공 삼았다. 그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하오펑에 대해 “다들 부러워하는 직장을 다니고, 열심히 하는데 왜인지 모를 불행함을 느끼는 캐릭터”라며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듣고 자란 아시아계 관객이라면 크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모의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샤오는 보다 전형적인 탕핑 세대 인물이다. 첸 감독은 “이미 포기했기 때문에, 실패 자체를 하지 않는다. 어차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테니 최선을 다하지도 않겠다는 것”이라고 샤오를 설명했다.
중국의 청춘들을 주인공으로 한 중국·싱가포르 합작 영화이지만 <브레이킹 아이스>에는 한국어가 대사로, 노랫말로 등장한다. 중국과 한국의 문화를 포괄하는 연길 지역이 그 배경이기 때문이다.
첸 감독은 이 배경 설정이 “아주 우연히 이뤄졌다”고 했다. 답사가 자유롭지 않은 팬데믹 기간이었기에, 구글맵으로 중국 북부를 살피던 중이었던 그는 사진 속 백두산 천지의 아름다움에 반했다고 한다. 중국행을 택한 첸 감독은 2021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21일간의 자가 격리 기간을 견딘 끝에 연길에 도착했다. 그는 “중국 안에서 이만큼 중국 같지 않은 곳은 처음이었다”며 “모든 간판이 한국어로 되어 있고, 어디를 가나 갈비를 팔고, 사람들의 외모도 달랐다”고 했다. “길 잃은 세 청년이 만나는 도시로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영화 속 한국어와 중국어가 공존하는 국경 도시 연길은 분주하면서도 황량한 모습이다. 터 잡고 사는 이들보다 드나드는 이들이 많아 보이는 이곳은 첸 감독의 의도대로, 청춘의 불안을 표현하기 좋은 밑바탕이 된다.
다만 중국의 동북공정 등 한·중간 역사 논쟁을 잘 아는 한국 관객에게는 소재로 사용되는 한국 설화와 노래가 불편함을 야기할 수도 있다. 단군 신화 속 웅녀 이야기가 ‘백두산 천지’에 얽힌 전설로 소개되는 등 한국 관객들의 보편적 상식과 어긋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첸 감독은 “한국과 중국 사이 민감한 (역사 논쟁) 사안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 신화가 한국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도 안다”면서도 “그런 사회·문화·역사적인 외부 요인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고 했다. 중국계 싱가포르인인 그는 “한국인도 중국인도 아닌 외부인으로서, 답사에서 보고 들은 것이 내게 준 울림을 작품에 녹여내는 데만 집중했다”고 했다. 그는 웅녀 설화에 대해 “호랑이 같은 동물이 포기할 정도의 힘듦을 참아낸 곰이 인간, 그것도 여성이 되었다는 얘기가 감동적이었다. 인내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중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니 아리랑 가사 중 ‘백두산’을 ‘장백산’으로 고쳐야 한다는 의견을 단호히 거절한 것도 그이다. 첸 감독은 “수백 년 동안 계속 전해 내려오던 노래를 정치 맥락 때문에 바꿔 부르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어 “중국과 북한의 국경 촬영을 할 때도 중국인 스태프들의 우려가 컸지만, 저는 정치 사회적인 부담감에 갇히지 않고 ‘왜 촬영이 안 되는지’를 물었습니다. 저는 외부인이니까요.”
첸 감독은 자신이 생각하는 영화감독의 역할은 “아름답다고 느낀 것, 일상에서의 시적인 부분을 포착해 표현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야기나 대사를 먼저로 놓는 감독도 있지만, 저는 제 영화에서 전달하고픈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영화는 세 사람의 무료함 속 청춘의 반짝임과 갑작스레 찾아오는 고독, 그 사이를 채우는 느슨한 우정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첸 감독은 “이 영화는 불안한 청춘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라며 “그 진심을 보아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했다.
1년 내내 따뜻한 싱가포르에서 나고 자란 첸 감독은 처음으로 ‘겨울 영화’를 고민했다. 기존에는 시나리오 작업에만 2~3년을 들이고 배우들이 대사 토씨 하나 고치지 못하게 했다면, 이번에는 그 강박을 거뒀다. ‘가장 추운 곳에서 세 명의 청년이 나오는 영화를 찍겠다’는 콘셉트만 가지고 배우들을 섭외했다. “중국의 ‘탕핑(躺平, 바닥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청년층)족’이 느끼는 감정을 포착하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만이 명확했다.
중국 유일의 조선족 자치주 연길을 배경으로 세 청년의 일주일간의 짧은 우정을 담은 영화 <브레이킹 아이스>는 그렇게 탄생했다. 2023년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던 이 작품이 지난 4일 한국에서 개봉했다. 중국·싱가포르 현지에서 공개된 지 2년여 만이다.
한국 개봉을 맞아 내한한 첸 감독을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첸 감독은 “중국 청년들이 느끼는 환멸감을 영화에 담았다”며 “중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외부인’으로서 청년들의 ‘표류하는 듯한 감정’을 포착하려 했다”고 말했다.
왜인지 우울한 낯의 하오펑(류호연)은 연길로 여행을 온다. 여자 주인공 나나(주동우)는 조선족의 문화를 소개하는 가이드다. 나나, 그리고 그의 지인 샤오(굴초소)와 하룻밤 어울리게 된 하오펑이 상하이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놓치며 세 사람이 우정을 나눌 시한은 연장된다. 영화는 소소한 일탈을 함께하며 급속도로 친해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제목에 등장하는 ‘얼음’은 세 인물의 관계와 청춘에 대한 은유다. 첸 감독은 “물을 냉장고에 넣어보면 2시간이면 얼어붙고, 밖에 꺼내두면 또 빨리 녹아 물로 변한다”며 “형태가 하나의 머물지 않고 환경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인물들의 관계에 빗대고 싶었다”고 했다. 세 인물은 순식간에 친해지지만, 언제 헤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기도 하다. 첸 감독은 “(헤어지더라도) 이들에게는 기억과 감정이 남을 것”이라고 했다.
첸 감독은 ‘탕핑 세대’를 표현하고자 ‘각자 다른 방식으로 실패를 겪은 이들’을 주인공 삼았다. 그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하오펑에 대해 “다들 부러워하는 직장을 다니고, 열심히 하는데 왜인지 모를 불행함을 느끼는 캐릭터”라며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듣고 자란 아시아계 관객이라면 크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모의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샤오는 보다 전형적인 탕핑 세대 인물이다. 첸 감독은 “이미 포기했기 때문에, 실패 자체를 하지 않는다. 어차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테니 최선을 다하지도 않겠다는 것”이라고 샤오를 설명했다.
중국의 청춘들을 주인공으로 한 중국·싱가포르 합작 영화이지만 <브레이킹 아이스>에는 한국어가 대사로, 노랫말로 등장한다. 중국과 한국의 문화를 포괄하는 연길 지역이 그 배경이기 때문이다.
첸 감독은 이 배경 설정이 “아주 우연히 이뤄졌다”고 했다. 답사가 자유롭지 않은 팬데믹 기간이었기에, 구글맵으로 중국 북부를 살피던 중이었던 그는 사진 속 백두산 천지의 아름다움에 반했다고 한다. 중국행을 택한 첸 감독은 2021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21일간의 자가 격리 기간을 견딘 끝에 연길에 도착했다. 그는 “중국 안에서 이만큼 중국 같지 않은 곳은 처음이었다”며 “모든 간판이 한국어로 되어 있고, 어디를 가나 갈비를 팔고, 사람들의 외모도 달랐다”고 했다. “길 잃은 세 청년이 만나는 도시로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영화 속 한국어와 중국어가 공존하는 국경 도시 연길은 분주하면서도 황량한 모습이다. 터 잡고 사는 이들보다 드나드는 이들이 많아 보이는 이곳은 첸 감독의 의도대로, 청춘의 불안을 표현하기 좋은 밑바탕이 된다.
다만 중국의 동북공정 등 한·중간 역사 논쟁을 잘 아는 한국 관객에게는 소재로 사용되는 한국 설화와 노래가 불편함을 야기할 수도 있다. 단군 신화 속 웅녀 이야기가 ‘백두산 천지’에 얽힌 전설로 소개되는 등 한국 관객들의 보편적 상식과 어긋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첸 감독은 “한국과 중국 사이 민감한 (역사 논쟁) 사안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 신화가 한국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도 안다”면서도 “그런 사회·문화·역사적인 외부 요인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고 했다. 중국계 싱가포르인인 그는 “한국인도 중국인도 아닌 외부인으로서, 답사에서 보고 들은 것이 내게 준 울림을 작품에 녹여내는 데만 집중했다”고 했다. 그는 웅녀 설화에 대해 “호랑이 같은 동물이 포기할 정도의 힘듦을 참아낸 곰이 인간, 그것도 여성이 되었다는 얘기가 감동적이었다. 인내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중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니 아리랑 가사 중 ‘백두산’을 ‘장백산’으로 고쳐야 한다는 의견을 단호히 거절한 것도 그이다. 첸 감독은 “수백 년 동안 계속 전해 내려오던 노래를 정치 맥락 때문에 바꿔 부르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어 “중국과 북한의 국경 촬영을 할 때도 중국인 스태프들의 우려가 컸지만, 저는 정치 사회적인 부담감에 갇히지 않고 ‘왜 촬영이 안 되는지’를 물었습니다. 저는 외부인이니까요.”
첸 감독은 자신이 생각하는 영화감독의 역할은 “아름답다고 느낀 것, 일상에서의 시적인 부분을 포착해 표현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야기나 대사를 먼저로 놓는 감독도 있지만, 저는 제 영화에서 전달하고픈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영화는 세 사람의 무료함 속 청춘의 반짝임과 갑작스레 찾아오는 고독, 그 사이를 채우는 느슨한 우정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첸 감독은 “이 영화는 불안한 청춘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라며 “그 진심을 보아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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