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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라시네프 ‘1등상’ 허가영 감독···“정상성에 질문하는 ‘불편한’ 영화 만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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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이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5-06-16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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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회 칸국제영화제 학생영화 부문인 시네파운데이션(라 시네프·La Cinef)에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졸업작품 <첫여름>이 초청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허가영 감독(29)은 왈칵 눈물이 났다고 한다. 외할머니가 모티브였던 작품이었기에 가짜 같이 찍고 싶지 않았던 진심을 누군가 알아봐 준 듯한 마음, 그리고 고생한 스태프들에게 보답을 할 수 있겠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1등상 수상이라는 영광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부뉴엘 극장에서 열린 시상식. 초청작 16작품 중 3등상을 에스토니아와 일본 작품이, 2등상을 중국 작품이 수상하면서 허 감독은 마음을 비웠다고 한다. “설마 한중일이 다 상을 받겠나” 싶은 마음에서다. 하지만 ‘설마’는 현실이 됐다. 1등상에 <첫여름>이 호명됐다. 이 부문에서 한국 작품이 1등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으로도 인간과 소수자에 대한, 삶과 가까이 있는 영화를 멈추지 않는 감독이 되고 싶습니다.” 단상에 오른 허 감독은 준비하지 않은 진심을 전했다.
경향신문은 지난 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팡테온 극장에서 수상작 시사회를 마치고 최근 귀국한 허 감독을 11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아직 칸에서의 감정을 소화하는 중”이라는 그는 “이제 (영화인으로서) 시작이니 두려움도 크지만, 조금 더 깃발을 꽂아보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허 감독은 “영화인으로서의 제 자신을 자각한 지 얼마 안됐다”고 말한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20대 초중반을 다양한 관심사로 채웠다. 4년을 휴학하며 음악 활동, 빈곤·노동 시민단체 활동, 환경·보건 질적연구 등을 했다. 한때 영화투자회사를 다니기도 했다. 그는 “영화와 먼 삶이었지만, 30대가 되기 전에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러지 않으면 미련이 남을 것 같아 지난해 2월 KAFA 진학을 결심했다”고 했다.
그에게 1등상을 안긴 <첫여름>은 KAFA 41기 졸업작품으로 만든 30분짜리 단편이다. 손녀의 결혼식이 아닌, 남자친구 학수의 49재에 가고 싶은 영순의 이야기를 담았다. 배우 허진(76)이 음악 소리만 나오면 춤추길 좋아하는 전형적이지 않은 할머니, 영순 역을 맡았다. 가부장제 아래 남편에게 순종하며 살던 세월이 길었지만, 손녀에게 “자고로 너를 즐겁게 해주는 남자가 최고”라 말하는 등 욕망을 이야기할 줄 아는 캐릭터다. 그는 <첫여름>을 통해 “성과 사랑과 삶이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노인도 섹스와 사랑을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내용은 픽션이지만, 허 감독은 2023년 세상을 떠난 외할머니를 떠올리며 시나리오를 썼다. 할머니와 청소년기에 6개월쯤 같이 살았던 허 감독은 그를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허 감독은 “할머니는 매일 마스크팩을 하면서 제겐 아무 관심이 없었다. 저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고 회상했다.
대학 노인복지론 강의 이 ‘이상한 여자’에 대한 생각을 바꿔놨다. 그를 ‘노인과의 인터뷰’ 과제의 주인공으로 삼으면서다. 첫 질문부터 인터뷰는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잘 지내셨냐”는 질문에 “남자친구가 있는데 연락이 안 돼서 수면제를 먹고 잔다. 너무 걱정된다”는 말이 돌아왔다. 생전 처음 마주 앉아 깊은 이야기를 나눈 자리는 5~6시간 이어졌다. 노인과 한국 여성에 대한 평소 생각이 다 뒤집히는 경험이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통과해 온 시간을 들으면서, 그의 이해하지 못했던 행동들의 이유를 알게 됐어요. 노인이라는 집단 아래 뭉뚱그려졌던 할머니가 처음으로 한 명의 개인, 한 명의 여성으로 보이더라고요. 집에 돌아오면서 얼얼한 감각이 계속됐습니다.”
허 감독은 이 인터뷰에서 할머니가 춤 추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후 허 감독은 고인이 된 할머니의 49재날, 스님의 목탁 소리에 맞춰 대웅전에서 춤을 추는 할머니를 상상했다. “소리가 마치 카바레 음악처럼 들리고, 할머니의 춤사위가 그려졌어요. 그 장면을 영화로 보고 싶었습니다. 내 영화 안에서라도 할머니가 그녀 자신만을 위해서 춤추는 모습을 재현하고 싶었어요.” 영화 속 캐릭터 영순이 탄생한 배경이다.
<첫여름> 만들면서 허 감독은 “‘졸업 작품으로 할머니를 팔아먹었구나,’ 라는 얘기를 듣지 않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고 했다. 노인 여성을 대상화하지 않고 진솔하고 세밀하게 담아내고 싶었다고 한다. 틈만 나면 작품에 등장하는 콜라텍과 카바레 답사를 다닌 것은 그래서다. 허 감독은 직접 노인들과 대화하고 춤을 추며, 시나리오 속 손녀가 아닌 노인 주인공 ‘영순’이 되어 극본을 쓰려고 했다.
허 감독은 칸에서의 여정에서 이 영화를 관객들에게 선보이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프랑스 칸에서 한 번, 1등상 수상 혜택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한 번 더 관객을 만났다.
‘49재’ 등 한국적 맥락이 짙은 영화인데도 연령대와 인종이 다른 관객들은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다. 노인 관객들의 “삶의 위안을 얻었다”는 말이 허 감독의 위안이 됐다. “너의 영화는 담백하고, 솔직하고, 척하지 않아서 좋다. 요즘 영화에서 잘 다루지 않는 인간성을 다루고 있어서 좋다”는 어느 관객의 말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지 않은 허 감독은 KAFA 재학 중 “너에겐 영화도 하나의 놀잇감 같다. 가기 힘든 길인데, 정말 이 길을 원하는지 잘 생각해보라”는 얘기를 듣곤 했다. “관심사도 넓고, 꼭 영화뿐이 아니라 글쓰기 등 다양한 예술을 사랑하기에 들었던 얘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관객들을 만나며 그는 “창작자로서의 존재 이유와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가 닿는 것의 기쁨”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 관객들과의 만남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첫여름>은 올해 부천판타스틱영화제, 대구단편영화제에도 초청되며 국내 영화제에서도 만나볼 수 있을 예정이다.
“영화는 하면 할수록 좋아지더라. 그리고 내 안의 이야기가 아직 고갈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허 감독은 영화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장편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영상에 담아낼까.
“여성 서사는 제게 가장 편하고, 언어 같은 이야기라 더 깊게 다뤄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만난 얼굴들이 여성만은 아니니, 다른 주제들에도 열려 있어요. 어떤 이야기든, 소위 말하는 ‘사회적인 정상성’에 대해 질문하고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허 감독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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